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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kon Z fc
    기타 2022. 12. 27. 13:20
    주의: 이 글은 리뷰가 아닙니다.

    Nikon Z fc를 선물 받았다. 내가 직접 고른 거고, 이것보다 더 비싼 것을 선물로 돌려줬으니 산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Nikon Z fc 16-50 SL Kit

    어차피 이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인 리뷰는 유튜브나 다른 블로그에 충분히 많다. 여기서는 이 사랑스러운 카메라를 2주 정도 만져보고 느낀 것을 조금 적어보려고 한다.

    왜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는가

    이 선택이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나도 너무나 잘 안다. 이 카메라가 기술적으로 최고의 카메라는 아니다. 틸트가 아래로 된다는 여러모로 난감한 점이 스위블로 개선됐다는 점만 빼면 형제 격인 Z50보다 좋을 것이라고는 디자인밖에 없으나, 가격을 훨씬 더 비싸게 받는다는 것도 다 안다. 현재의 니콘과 Z 마운트가 소니 + E 마운트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도 안다. 가격 좀만 더 내면 A7C나 전 세대의 A7 시리즈를 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카메라를 고르기 전에 정말 많은 글과 영상을 봤다. 그러면 왜 이 카메라를 골랐는가?

    잠시 화제를 돌려보자. 만약 당신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면 당신의 경쟁자는 누구일까? 다른 게임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 궁극적인 경쟁자는 유튜브다. 결국 게임도 사람의 한정된 시간 안에서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다. 그리고 통계상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앱은 유튜브다. 유튜브보다 당신의 게임이 재미가 없다면, 다른 게임보다 재밌다 하더라도 그 게임을 사람들이 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코로나 이후로 게임을 오히려 덜 하게 된 이유도 게임보다 재밌는 유튜브 채널들이 최근 몇 년간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메라의 경쟁자는 누구일까? 사진작가가 아닌 이상 그 경쟁자는 결국 스마트폰일 것이다. 똑같이 사진을 찍는 기능이 있고, 결과물도 SNS에 공유할 때 문제없는 수준이다. 광학적 한계를 넘기 위한 온갖 기술의 도움으로 저조도 사진 퀄리티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최근의 스마트폰 발표회는 거의 카메라 발표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카메라 기능 홍보 비중이 높기도 하다. RAW 사진과 ProRes 영상까지 찍어준 지도 꽤 됐다. 카메라와 달리 스마트폰은 거의 항상 손 근처에 있다. 무언가를 찍고 싶을 때, 잠금 화면에서 버튼 하나만 탭 하면 바로 카메라 앱이 열리고, 아무 고민 없이 셔터 버튼을 터치하면 된다. 화질의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손에 쥐어져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거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사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런 스마트폰에 맞서 "왜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내야 한다. 대답을 내지 못한 채 카메라를 구매한다면 그 카메라는 결국 장롱이나 서랍 깊숙한 곳에 들어가 조용히 당근마켓에 올라갈 날을 하릴없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재미와 즐거움이었다.

    찍는 재미, 보는 즐거움

    Z fc는 내가 가진 전자제품들과는 굉장히 궤가 다른 기계다. 그동안 나는 높은 사양의 제품을 한계까지 쓰는 것을 선호했다. 최고 사양을 사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냉정하게 그 사양을 내가 쓸 수 없거나 나에게 필요가 없을 때였다. 핸드폰 역시 배터리 등 여러 이유로 iPhone 14 Pro Max를 골랐고, 과한 용량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판단해 256GB를 구매했다. 지금에야 회사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산 노트북 역시 인텔 시절 맥북 프로의 13인치와 15인치 사이의 GPU 성능 차별을 보고 굳이 15인치를 구매했다.

    그런데 Z fc는 '높은 사양'과는 거리가 있다. 일단 판형부터 풀프레임이 아니다. APS-C다. 큰 판형이 주는 얕은 심도나 고감도 저 노이즈 등의 강점을 일정 부분 타협해야 한다. 굳이 니콘을 골라야 한다면 Z5/Z6 II/Z7 II/Z9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이 선택의 과정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처음 사고 싶었던 카메라는 소니 A7M2였다. 지금 시점의 A7M2가 아니라, A7M2가 풀프레임 카메라 시장을 뒤집어놓았던 그 시점의 A7M2를 사고 싶었다. 그러나 사지 않았다. 카메라보다 더 사고 싶은 것이 많았다. A7M3도 A7M4도 그랬다. 이 카메라들은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와 '가지고 싶다' 사이의 벽을 넘지 못했다.

    A7C는 그 벽을 넘길뻔한 카메라이긴 했다. 일단 풀프레임치고 작았고, 특히 실버 모델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A7 표준 모델은 내 심장을 뛰게 하지 않았으나, A7C는 심박수를 5 bpm 정도는 높여줬다. 그러다 친구가 문제의 카메라를 한 대 추천해줬다.

    Fujifilm X100V / (c) fujifilm

    바로 후지필름 X100V. 보자마자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카메라를 알게 된 순간부터 카메라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일단 너무 예쁘고, 결과물 역시 예뻤다. 물론 RAW 파일을 하나하나 예쁘게 보정하면 보정 관용도가 높고 이미지도 칼같이 정확한 다른 카메라들이 이 카메라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겠지만, 이 카메라는 필름 시뮬레이션이 있으니 그런 과정이 필요 없지 않나.

    하지만 이 카메라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 같이 이 카메라에 빠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2022년 말부터 후지필름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수요와 반도체 생산 대란으로 인해 현재 이 카메라는 입고가 되자마자 팔려나가고, 2달 이상 대기를 해야 하는 카메라가 되고 말았다. 내가 직접 사는 것도 아니고,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 선물을 해주는 사람에게 광클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다른 카메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걸려든 카메라가 바로 Z fc였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스치듯 몇 번 본 모델이기는 했으나, 많은 사람의 손을 탄 바람에 묘하게 보기 싫게 때가 탄 모델들만 전시되어 인상이 좋지 않았던 모델이었다. 어렸을 때 만지면서 놀던 니콘 쿨픽스(!) 디카의 기억이 나쁘진 않았지만, 요즘의 니콘이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처음엔 호감을 가졌던 모델은 아니었다.

    Z fc / 프리미어 익스테리어 Amber brown

    그러나 이 카메라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전자제품 매장에서 직접 만져보는 과정에서 상단 다이얼과 디스플레이를 보게 된 것이었다. 돌리는 맛이 있는 다이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단에 조리갯값 표시용 7-segment LCD가 마치 필름 카운터처럼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복각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과거의 영광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느끼고 만 거다. 라이카 M-D처럼 와인더처럼 생긴 엄지 그립을 넣는, 과하다 싶은 시도는 없었던 것도 좋았다.

    조리개 수치를 표시해주는 7-segment LCD가 마치 필름 카운터처럼 배치돼있다.

    물론, 저 다이얼들이 저렇게 나와 있다고 좋은 건 아니다. 필름 자리에 배치된 ISO 다이얼은 눌러서 돌려야 하다 보니 오히려 불편한 요소이기도 하다. (어차피 ISO AUTO 모드로 찍고, 셔터 스피드와 노출계 다이얼을 돌려가며 찍으면 ISO는 자동으로 정해지니 실제로 큰 불편이 생기진 않는다만….) 하지만 손끝으로 다이얼을 돌려가며 찍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Nikon Z fc with NIKKOR 28mm f/2.8 SE

    그래서 결국 이 카메라는 2주 내내 외출할 때마다 거의 항상 가방에 들어있었다. 예쁜 카메라를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좋고, 직접 찍는 재미도 좋았기 때문이다. 스페셜 에디션으로도 출시된 28mm f/2.8 렌즈도 하나 구매했고, 꽤 괜찮은 보케와 풀프레임 가장자리 선예도는 그닥이지만 크롭 화각까지는 괜찮은 화질에 만족하고 있다.

    0123

    이런저런 단점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아직은 많이 초보적인 단계지만, 라이트룸으로 보정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한 것 같다. 기본 JPEG도 색감이 괜찮은 편이고 말이다. 이번 카메라는 정말로 오랫동안 들고 다니면서 재밌게 사진을 찍을 것 같다.

    사족) 어찌 글이 많이 길어지긴 했는데... 이렇게 써야 만족하니 글을 2년에 한 번 올린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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