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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한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생각 2020. 5. 28. 21:12

    내가 논리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논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라고 배웠고, 실제로 그렇게 훈련이 돼있을 뿐이다. 기실 나는 논리적이지 않은 판단을 할 때가 더 많다. 다만 그 판단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래서 정당화를 해야 하거나 평가를 해야 할 때, 그 근거를 찾기 위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았을 논리라는 방법을 사용할 뿐이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사실 이 말 자체가 '배제'를 하는 사람이 페미니스트니? 라고 묻는 일종의 멸칭이다.)의 주장에 너무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나에게 모든 혐오는 곤혹스럽다. 혐오의 칼날이 나를 향했던 적도 많았기 때문에, 쉽게 혐오 대상자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감정적으로 힘들다. 그러니, 감정적으로 힘든 지금 상황이 왜 왔는가, 왜 저들은 저렇게 말을 하는가를 좀 더 생각해보게 됐다.

    이유는 물론 다양하다. 사람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것은 항상 위험하지 않은가. 누구는 공포 때문에, 누구는 인권 문제를 '파이'가 정해진 파워 게임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그들이 혐오에 빠진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 하나하나에 공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 중립 화장실'이라는 것이 '남성이 여성의 공간에 침입해 쉽게 불법촬영을 할 수 있는 곳'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대에 MTF 트랜스젠더가 입학을 하는 것이 여성의 파이를 뺏는 '불공정'한 일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해한다.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그들식 표현이다. 혐오 표현을 인용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고 죄송하지만...) '젠신**'라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알겠으나, 그럼에도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는 '패싱'되기 가장 힘든 성소수자다. 그들은 다른 어느 성소수자보다 혐오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그들은 어느쪽 시스젠더에게 가든 '너는 여자/남자답지도 않은데 네가 무슨 여자/남자냐?', '너는 왜 다른 여자/남자도 하지 않는 (과장된) 짓을 하냐?' 로 치이기 마련이다. 남들이 쉽게 이용하는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양 쪽 모두에게 폭력과 혐오를 느껴야 한다. 누군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자신을 인정하려는 트랜스젠더의 행동이 고깝게 보일 수는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않다. 소수자가 도덕적 우위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의 행동이 기분 나쁠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기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게가 맞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가 나의 주장에 방해가 된다고 싫다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반례가 될 수 있는 주장이었다면, 그 주장은 트랜스젠더가 있지 않아도 언제든 무너질 거다. 그런 주장은 거두는 게 맞다.

    나는 이런 이유로 트랜스젠더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고 연대한다. 혐오라는 것은 늘, 다수/소수를 넘어 누구에게나 스며들 수 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혐오했을 것이다. 내 행동 속에 숨은 혐오를 더 잘 깨닫고, 깨달은 후에는 반성해가며 더 건강한 내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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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웬만하면 이런 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다. 어디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페미니즘에 말을 얹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리트윗을 좀 더 많이 했다. 하지만 혐오는 혐오다. 소수자성은 교차적이다. 어떤 소수자든지간에, 어느 분야에서는 다수자가 될 수 있다. 게이 커뮤니티 내의 여성혐오가 '남성'의 다수자성이 나타난 사례이듯, TERF가 보여주는 트랜스젠더 혐오는 '시스젠더'의 다수자성이 나타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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